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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6] [4.11총선 인터뷰] “무력한 여당ㆍ포퓰리즘 야당으론 민심 못 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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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력한 여당ㆍ포퓰리즘 야당으론 민심 못 읽어”

4ㆍ11 총선 예비후보자 릴레이 인터뷰⑤ 강창규(새누리당ㆍ부평을)

[425호] 2012년 02월 11일 (토) 14:43:00 한만송 기자 mansong2@hanmail.net

 

 

강창규 새누리당(=옛 한나라당) 부평<을> 예비후보.
    강 예비후보는 인천의 대표적 자수성가한 기업인이다.


강창규(56) 새누리당(=옛 한나라당) 부평<을> 예비후보는 자수성가한 기업인이다. 인천시의회 4~5대 의원을 지냈고, 5대 의회 2기 의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는 불우한 가정 형편으로 인해 학업을 포기하고 농사를 지었다. 15세에 170원을 들고 상경해 지금은 연간 매출 2200억원의 중소기업 씨이오(CEO: 전문 경영인)이다.

대신철강 등 3개 기업을 경영하고 있는 강 예비후보는 “난 어렵게 살아서 없는 서민들의 삶을 누구보다 잘 안다. 시의원 8년 하는 동안 나만큼 지역에 예산을 많이 가져온 정치인은 없다”고 한 뒤 “무력한 여당과 포플리즘(populism. 정책의 현실성이나 가치판단, 옳고 그름 등 본래의 목적을 외면하고 일반 대중의 인기에만 영합해 목적을 달성하려는 정치행태)에 함몰된 야당으로는 민심을 제대로 읽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강 예비후보는 경쟁 후보들과의 자신의 차별성에 대해선 무일푼으로 인천에 올라와 중견기업을 만든 정직함과 성실함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평가에선 ‘글로벌 경제 위기와 대통령 5년 담임제로 인해 후한 평가를 받지 못한다’는 말로 옹호했다.

다음은 강창규 예비후보와의 일문일답이다.

 

 

강창규(56) 새누리당 부평<을> 예비후보.     15살 때 170원을 들고 상경해
    지금은 대신철강 CEO로 성장한
    강 예비후보.

▶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후보의 인생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

= 아버지가 오십에 나를 낳았고, 어머니는 여섯 살 때 돌아가셨다. 큰 형수 손에 컸다. 형수가 산에서 솔방울 따 팔아 목포 유달산으로 수학여행을 가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난다. 가정 형편이 너무 어려워 중학교를 진학 못하고 농사만 졌다.

논일을 하면서 교복 입고 자전거로 등교하는 친구들보며 부럽고 서러왔다. 그래서 무작정 서울로 갔다. 용산역에 내릴 때 170원이 가진 돈의 전부였다. 용산에 와서 전기불도 처음 봤다.(웃음)

고무신 신고 버스 타고 내린 게 신설동이다. 성북구 종암시장에서 쌀가게 종업원으로 취직해 먹고 살았다. 그러다 연탄 차 운전하다가 당시 평화시장 사모님들에게 일 잘한다고 소개받아 지금의 대한전선에 취직했다. 공장장은 기술을 배우라고 했지만, 난 싫었다. 당시 동을 녹인 찌꺼기를 모아서 파는 일을 시작해 돈을 모을 수 있었다.

아침마다 동을 녹이면 그을음이 생기는데, 그게 나중에 떨어져 찌꺼기가 된다. 그걸 모아 가는 할아버지가 있어 신기해 쫓아가보니, 하천에서 가마니로 물길을 막아 찌꺼기를 걸러내니 구리만 남더라. 당시 하루만 해도 돈 만원이 됐다. 한 달 월급인 셈이다. 그렇게 6~7년을 해 돈을 모았다.

▶ 철강회사를 하는데, 어떻게 철강 일을 하게 됐나? 현재 계열사들의 매출규모는?

= 조그만 공장을 차려 제련해서 나오는 부산물을 녹여 파는 사업을 하다가 대한전선이 현대화시설을 해서 부산물이 나오지 않아, 삼동상사를 차려 고철을 모아 납품했다.
77년에 인천 와서 계속적으로 제철 사업을 했고, 88년 4월 1일 현대제출에 고철 등을 납품하는 대신철강(주)을 설립했다. 현재는 고철과 에이치(H)빔을 생산하고, 중국에 공장을 증설했다. 아이티(IT)사업에도 진출했다. 중국 회사를 제외한 이 회사들의 지난해 매출액은 2200억원 정도이다.

▶ 사회적으로 성공한 경영인인데 왜 굳이 정치를 하려는지 궁금하다.

= 정치를 전혀 몰랐다. 아내나 가족들도 다 말린다. 하지만 시의원 8년 해보고 인천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떠나는 인천이 아니라 살고 싶은 인천을 만들고 싶었다. 내가 여기(=인천) 와서 성공했으니 손잡고 발전시켜보고 싶었다. 그 역할을 하고 싶다.

▶ 돈 많고 성공한 경영인이다. 한국사회를 과연 기회가 균등한 공정한 사회로 보는가?

= 대기업들이 문어발식으로 기업을 확장하거나, 돈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하는 것은 문제다. 골목 상권이 다 죽었다. 슈퍼나 가게 인심이 야박해졌다. 그만큼 서민들 삶이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자식들 낳아 대학까지 보냈지만 일자리가 없어 걱정하는 처지다. 시민들이 이명박 대통령 뽑을 때는 경제 어렵지 않게 해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시민들에게 불평등한 부분이 많아, 현 정부에 대한 불만이 표출되는 것 같다. 개선할 점이 많다.

 

 

강창규(56) 새누리당 부평<을> 예비후보.
    인터뷰 내내 투박하지만 진솔하게 자신의 소신을 밝히고 있는
    강 예비후보.


▶ 기업 경영자로서 또는 개인적으로 꿈은?

= (회사를) 증권시장에 상장시키는 것이 꿈이다. 지금도 코스닥 등록은 시간문제다.

▶ 2006년 지방선거 때 당시 박근혜 당 대표 사진을 현수막 등 선거 공보물에 내세웠고,
    2010년 지방선거 땐 이명박 대통령 사진을 내세웠다.
    친이(=이명박)계냐, 친박(=박근혜)계냐?

= 나는 친이나 친박, 어디에도 들어가 본 적이 없다.

▶ 한국자유총연맹(이하 자총) 인천광역시지부 회장 등을 역임했다.
    보수적 색채가 아주 강한 것 같은데?

= 자총은 이승만 대통령 때 반공연맹에서 출발했다. 예전에 보수 꼴통이었는데, 지금은 봉사도 많이 한다. 보수는 과거이고 진보는 미래라는 흑백논리는 시대상황과 맞지 않다. 분단 상황에서 안정을 추구하는 군부세력을 보수로, 이에 저항하는 세력을 진보로 가르며 사회를 발전시켜왔다. 90년대 이후 사회가 안정되지 않았다면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할 수 있겠는가. 보수는 사회를 지탱해온 기반이다.

▶ 본인의 정치적 성향은 어떠한가?

= 보수, 진보를 떠나서 보수가 하든지 진보가 하든지 시민들이 이해하고 같이 가는 길이라면 간다. 내가 자총 지부장 하고,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부의장 하다 보니 보수로 보는 것 같다.

▶ 진보 정책 중 마음에 드는 것이 있는가?

= 무상급식, 무상교육 다 좋다. 시간을 가지고 해야 한다. 한 번에 다 추진하면 세금이 너무 들어간다. 지방자치단체 봉급(급여)도 못주는 상황이다. 단계적으로 해야 한다.

▶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이명박 정부를 평가해 달라.

= 경제가 호황이었다면 이명박 정부에 대한 평가도 달랐을 것이다. 현 경제 위기는 국내의 여건 변화보다 유럽에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크다. 여기에 유기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정부의 책임을 말한다면 정부의 무능을 인정해야한다.

우리 정치가 대통령 5년 단임제를 채택한 후 임기 말 대통령이 후한 평가를 받은 적이 한 번이라도 있는가? 4대강 사업을 예로 보면, 계획 짜고 입안하고 국회 설득하고 나면 임기 절반이 소요된다. 그래서 사업을 서두르게 된다. 혹여나 부실이라고 입증되면 야당의 집중 포격을 받는다. 이게 현실이다. 대통령 중임제로 전환해도 이 같은 불합리한 제도는 바뀌어야 한다.

▶ 공천을 놓고 경쟁하는 다른 예비후보들과 비교해 본인은 어떤 차별성이 있는가?

= 새누리당 예비후보 중 유일하게 부평에서 30년 넘게 주민들과 희로애락을 같이 했다. 여기서 태어나긴 했지만, 서울에서 살다가 자신의 영달을 위해 많지 않은 나이에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고향은 충청도지만 인천 올라와 중소기업 경영하면서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았고, 부평에서 낳은 아이들도 어느덧 다 커 제 역할을 한다. 봉사활동에도 나름 최선을 다해왔다. 지역민과 오랜 기간 생활하며 그들과 함께 생각을 키워왔다. 지역구 의원을 뽑는 것은 지역 민심을 대변할 사람을 뽑는 것이다. 제가 적임자라고 감히 생각한다.

 

 

강창규(56) 새누리당 부평<을> 예비후보.


▶ 부평은 어떤 곳인가?

= 부평은 과거 공장지대가 산재해 있었고, 주택단지가 계획 없이 들어서 인천의 대표적인 서민 집단주거지다. 그러다 90년대 들어 아파트들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차츰 서울의 베드타운 비슷한 형태로 성장해왔다. 결국 인천시의 도시 인프라 정책에서 소외된 계기가 아니었나, 한다. 색깔로 표현하면 회색과 쪽빛이 어우러진 모습이라고 할까? 과감히 화려한 색깔을 입혀야 한다. 그래서 경인고속도로 통행료 폐지와 교육여건 개선, 지하철7호선 역세권과 골목상권 활성화에 역점을 둘 작정이다.

▶ 통상 자식들을 회사에 입사 시키는데, 왜 입사시키지 않는가?

= 중소기업 운영하지만, 좋은 학교 나온 애들은 (중소기업 입사를) 기피한다. 학사장교들이 희망해서 오면 열심히 일한다. 그렇게 발전시켰다. 아들 와서 일하면 그들(=학사장교 출신 입사자)의 꿈이 없어진다. 그 사람 중 한 명을 사장 시켰다. 정년도 연장해줬다. 그 사람들이 고생해 만든 것인데, 그 방석에 (자식들을) 앉히는 셈이다. 교육시켜주었으니 적성에 맞는 일을 하라고 (자식들에게) 말했다. 아직까지는 회사를 (자식들에게) 물려줄 생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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